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교리해설⑤ 동정일여
일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동정간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수행하여 동정 없는 자리에서 능히 동과 정을 통하여 산 힘을 기르고 활동하는 대도를 밝힌 표어입니다.
「과거 도가에서 공부하는 것을 보면 정할 때 공부에만 편중하여 일을 하자면 공부를 못하고 공부를 하자면 일을 못한다하여 부모처자를 이별하고 산중에 가서 일생을 지내며 혹은 비가 와서 마당의 곡식이 떠내려가도 모르고 독서만 하였다니」(수행품 3장) 어찌 세상을 이롭게 하고 창생을 건지는 큰 길이 되겠습니까. 이와 반대로 세속사람들은 대개가 일이 있으면 오욕을 취하기 위하여 헤매이다가 길이 없으면 사심잡념과 주색낭유로써 일생을 허비하였으니 또한 인생의 밝은 길과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없읍니다. 무릇 우주에는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서로 바탕하고 서로 도와 운행함으로써 만물이 생성의 은혜를 입고 살며 인간에는 동과 정 두 때가 서로 바탕이 되고 도움으로써만 큰 힘과 큰공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낮과 밤의 이치와 같아 밤에 잠을 잘자야 낮에 일을 잘할 수 있으며, 낮에 일을 잘해야 밤에 안심하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은 동물로서 하루를 통하여 놓고 잠자는 시간외에는 거의 활동하는 시간이요 현대와 같이 생존경쟁이 극심한 때에 정할 때 공부만은 할 수도 없거니와 하였다할지라도 마치 그늘에서 자란 버섯과 같이 곧 시들고 말 것입니다.
예로부터 큰 도와 큰 일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동정간에 간단없는 공부심과 준비생활을 아니한 사람이 없었으니 우리는 일과 공부를 둘로 보거나 일 있을 때는 일에 끌려 방황하고 일 없을 때에는 허망한 생각에 빠져 일생을 헛되이 지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정일여란 일 있을 때나 없을 때를 오직 간단없이 공부심으로 계속하여 안으로 텅 빈 마음에 바탕하고 밖으로 천만경계에 끌리고 물듦이 없는 마음으로 일을 해 나가는 것이요. 또한 일 없을 때에는 염불 좌선 기도 경전 연마 등으로 일심과 지혜의 힘을 길러 일 있을때의 준비를 하고 일 있을 때에는 먼저 대의를 세우고 온전한 생각으로 잘 취하하여 그 일을 그르치지 않으며 일 없을때의 심경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동정과 주착이 없는 각자의 자성을 체득하여 동정간에 한결같고 걸림 없는 마음을 길드려 나가면 날을 기약하고 큰공을 이룰 것이니, 이 동정일여의 법이라야만 어디서든지 누구나 큰 힘을 얻어 실생활을 빛낼 수 있는 산법이 될 것입니다. <교무부>
[교리해설] ④ 무시선 무처선
때와 곳 없이 간단없는 마음으로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공부하는 도량을 삼아 부처를 이루는 선법으로 본교의 원융무애한 수행 길을 밝힌 표어입니다.
선이란 「원래 분별주착이 없는 참된 성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어서」 천만 가지 욕심경계에 물들고 막힘이 없이 참되고 바른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큰 도와 참된 생활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선을 닦지 아니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공부를 대단히 어렵게 생각하거나 실생활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기어 직업을 갖거나 처자가 있어도 못할 것이요 욕심경계와 시끄러운데 처해도 못할 것이라 하여 홀로 산중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서만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만일 조용한 곳에 앉아서만 선을 닦고 경계 속에서 활동하면서 닦지 못할 선이라면 세상에 쓸모 없는 병든 선이라 불안과 고통에서 허덕이는 전 인류를 구원할 산 법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품 자체가 한갓 공적에만 그친 것이 아니니 앉아서 무정물과 같은 선을 닦을 진대 무용한 병신을 만드는 일이라 시끄러운데 처해도 마음이 요란하지 아니하고 욕심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동하지 아니하여야 참 선이요 참 정이라」하시었으니 어찌 구차히 시간과 처소를 택하여 대승의 수행길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신 무시선 무처선의 공부법은 따로이 시간과 처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우주를 선방 삼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항상 자성을 여의지 아니하고 천만경계 중에서 동하지 않는 일심정력을 얻는 빠른 공부길입니다. 이 법만 자상히 알고 보면 괭이를 든 농부도, 마치를 든 공장도, 주판을 든 점원도, 정사를 잡은 관리도 누구나 다같이 선을 할 수 있습니다. 더욱 현대와 같이 복잡한 정신생활에서는 원래 착이 없는 마음을 알아서 원래 착이 없는 행을 닦는 선법이 아니고는 잠깐도 마음의 안정과 정화를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속에서 경계를 대할 때마다 항상 공부하는 대중을 놓지 않고 안으로 마음 지키기를 허공과 같이하고 밖으로 경계 대하기를 태산과 같이 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경지에 이르고 보면 일체 법에 걸리고 막힘이 없는 큰 힘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대승의 활선이라 할 것입니다. <교무부>
교리해설 1 = 법신불 일원상
이 宇宙에는 한 主人公이 있습니다. 形相과 이름이 없고 말과 말이 끊어져서 萬有밖에 있으되 능히 만유를 살리고 죽이며 萬有와 함께하여 不斷히 움직이되 삼세를 일관하여 변함이 없고 十方을 두루하고 우주만물이 이에 바탕하고 이에 의지하여 한없는 생명과 은혜를 입고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모든 성자 철인들이 이 한 진리를 깨치기 위하사, 身命을 온통 바치시었고, 이 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사 온갖 사랑을 다 하시었으니, 儒家에서는 이를 일러 太極 혹은 無極이라 하고, 道敎에서는 道 혹은 自然이라 하고, 佛敎에서는 法身佛이라 하여 이름은 각각 다르나 그 原理는 하나인 것입니다.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 「萬有가 한 體性이며 萬法이 한 根源이로다. 그 中에 生滅없는 道와 因果報應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서품 1장) 하신바와 같이 대종사님께서는 스스로 깨치신 경지에서 만유와 만법의 근원인 한 진리 한 두렷한 기틀을 말씀과 方便으로 이르지 아니하시고 그 모습 그대로 한 相을 지어 보이셨으니 이 진리가 바로 一圓으로서 「一圓은 法身佛이니 宇宙萬有의 본원이고 제불제성의 心印이요 일체 衆生의 本性이다」(교리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一圓은 萬眞理의 본원이요 萬信仰 統一體로서 진리를 찾는이가 이 밖에 찾을 길이 없고, 법을 찾는 이가 이밖에 믿을 곳이 없으며, 공부를 하는 이가 이밖에 닦을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宇宙萬有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心印인 法身佛 一圓相을 信仰의 對像과 修行의 標本으로 모시고」(교법의 총설)라고 밝히시어 과거와 같이 어떠한 物相이나 名號나 人格 즉 佛像등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시고 一圓의 眞理 자체를 최고종지로 하여 편벽된 수행을 圓滿한 修行으로 一圓化하시었고 편협하고 미신적인 신앙을 원만하고 사실적인 신앙으로 돌려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宇宙에 充滿하여 萬有를 通하여 나타나지 않음이 없는 진리를 표준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공부하는 마음과 佛供하는 생활을 놓지 않고 현실 속에서 한없는 慧福을 얻어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교무부)
피드 구독하기:
글 (Atom)